노화와 노화에 따른 질환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시간의 연장과 동시에 노인성 질환에 노출될 위험성도 커졌습니다. 노인성 질환은 나이가 듦에 따라 유병률이 증가해서 노인에게 흔하게 발견되는 질환입니다. 노화는 생애주기를 거치며 느리게 진행되지만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생리기능을 감소시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신체 회복력의 감소로 신경퇴행성질환, 심장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 당뇨, 악성종양 같은 노화와 관련 질환에 더 민감하게 되고 사망 위험률이 증가합니다. 어쩌면 노화를 막는다는 것은 단순히 수명 연장뿐 아니라 노인성 질환도 막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진시황제가 꿈꿨던 무병장수처럼 별다른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노화의 생물학적 원인
영원히 살고자 했던 것은 비단 진시황제만이 꿈꿨던 것은 아닙니다. 인류는 노화를 막기 위한 방법을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그 선방에는 노화를 막기 위해 노화가 발생하는 기전을 생물학적으로 규명하는 생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과학적 연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어 왔고 수많은 연구를 통해 노화가 어떻게 발생하고 조절되는지와 노화로 인한 질환 등을 체내의 세포단위와 유전단위로 메커니즘을 밝혔습니다.
표 1. 노화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 특징
텔로미어 길이 단축 | Telomere shortning |
영양소 감지능력 저하 | Nutrient sensing decline |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 | Mitochondrial dysfunction |
세포 노화 | Cell senescence |
산화 스트레스; 활성산소 | Oxidative stress |
DNA 복구 저하 및 DNA 손상 축적과 응집 | Deterioration of DNA repair and accumulation of DNA damage |
단백질 항상성 변화; 잘못 접힌 단백질의 축적과 응집 | Changes in protein homeostasis leading to the accumulation and aggregation of misfolded proteins |
세포 간 소통 변화 | Changes in cell-to-cell communication |
줄기세포 고갈 | Stem cell depletion |
후생유전학적 조절 변화 | Changes in epigenetic regulation |
노화는 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개체라 하더라도 극적으로 차이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여왕벌과 일벌은 유전적으로 동일하지만 여왕벌은 평균적으로 일벌보다 10배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또한, 인간의 경우 일란성쌍둥이라 할지라도 주변환경과 생활습관이 다르면 노화가 다르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첫 번째는 노화가 유전 정보 외에도 외부 요인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부 요인들은 우리 몸에 생물학적 변화를 야기해 노화 진행을 변화시킵니다. 이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후생유전적 요인이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복잡성입니다. 노화의 궁극적인 원인을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생물학적 변화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연구자들이 밝혀낸 노화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 특징은 10가지 정도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 외에도 더 다양한 노화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또 다른 과학자들은 우리 몸 속 변화와 현상을 아울러 노화를 조절하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10가지 중 하나가 나머지를 조절할 수도 있고, 지금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밝혀질 무언가가 더 있거나, 또는 그 무언가가 위의 모두를 조절할 수도 있거나 예측할 수 있는 가설은 많습니다. 이는 연구자들이 앞으로 밝혀내야 할 과제입니다.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연구
노화와 관련해서 텔로미어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중요한 유전 정보를 대신해 사라지는 염색체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흔히 골무에 빗대어 이야기하는데 염색체 말단 부위를 보호합니다. 그런데 텔로미어가 특정 수준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는 분열과 성장을 멈추며 노화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텔로미어를 연장하는 방법으로 노화를 방지하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텔로머레이스(telomerase)입니다. 텔로머레이스는 텔로미어를 연장시켜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아주는 효소입니다. 그러나 텔로머레이스가 활성화되어 세포가 무한에 가까운 세포 분열 능력을 얻게 되면 암이 유발될 수도 있어 텔로미어를 연장하여 노화를 억제하는 방법은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이 외 방법으로 최근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줄기세포 자체를 우리 몸에 다시 넣어주는 것입니다. 최근 하버드의대 블라바트니크연구소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팀은 과학저널 Cell에 늙은 생쥐의 노화를 돌리거나 생쥐의 노화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생쥐 세포의 노화를 되돌리기 위해서 체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역분화는 4가지 인자인 '야마나카 전사인자(Oct3/4, Sox2, Klf4, c-Myc) 중 3 가지를 혼합한 칵테일을 사용했습니다. 눈먼 생쥐의 손상된 망막 신경절과 노화된 뇌, 근육 신장 세포에 혼합한 야마나카 전사인자 칵테일을 투여하고 항생제로 인자들을 작동시키자 쥐가 시력을 거의 되찾았고 뇌, 근육, 신장 세포도 젊은 상태로 회복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치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생체시계를 되돌린 것입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Induced Puripotent Stem Cell): 다른 모든 유형의 세포로 발달하도록 만들 수 있는 미성숙한 세포, 역분화 만능줄기세포로 불린다. 성인의 체세포에서 네 가지 야마나카 인자(Oct3/4, Sox2, Klf4, c-Myc)를 이용하여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바꿀 수 있다.
cf. 배아줄기세포(ESC, Embryonic Stem Cell): 초기배아에서 얻어진 세포주로 미분화상태로 세포 증식이 가능한 정상적인 비암화세포이다.
반대로 후생유전자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여 생쥐의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DNA가 접히는 방식만 변화시켜 노화가 두 배 빠르게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유전자에 붙어있는 단백질이나 화학물질인 후생유전자가 스위치처럼 유전자 작동 여부를 지시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DNA가 손상되어 노화가 진행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후생유전이란 우리 몸 안에 유전자는 변하지 않지만 유전자 스위치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운동 유무에 따라 켜지거나 꺼지며 염색체 구조 변화시키는데 이를 후성유전이라고 합니다. 싱클레어 데이비드 교수는 노화는 후성유전적 변화 때문에 생기는 정보의 상실이라고 말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몸의 노화 과정은 가역적인 것이라 밝혔습니다.
고령사회에 노화연구의 필요성
한편,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이미 접어들었으며,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의료비 상승, 국민 의료보험 부담 증가, 생산인구의 감소로 경제 성장 동력 저하 등 국가 경쟁력 저하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화에 대한 연구는 국가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노화연구는 미국, 영국, 일본 같은 연구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특히 기초과학 차원에서 노화 기전 연구의 비중이 가장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꾸준히 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고려대 전옥희 교수 연구팀은 복합적 스트레스로 정상세포가 변형되면서 생성되는 노화세포가 노화유발인자를 생산하며 만성 전염증성 환경을 만들고 만성 조직손상을 야기해 노화를 촉진한다는 점을 착안하여 실험을 진행했고, 젊은 쥐와 나이 든 쥐 간에 혈액을 교환하는 실험기법(heterochronic blood exchange)으로 노화세포에서 분비되는 인자들이 '노화전이'를 유발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반대로 노화세포를 없애는 세놀리틱 물질(senolytic agent)을 주입하면 노화전이 기능을 억제해 노화 증상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앞서 2015년에 발표된 Laura Niedernhofer 교수팀의 연구보다 진보된 것으로 실험 설계가 돋보입니다.
한편, 2020년 싱클레어 데이비드 교수는 [노화의 종말]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요. 책에서 교수는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질병인 동시에 질병의 근원'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노화를 하나의 질병처럼 치료할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있는데요. 싱클레어 데이비드 교수의 말처럼 인간의 노화를 억제하거나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될지, 무병장수의 문을 열어 줄지 앞으로의 노화연구가 기대됩니다.
레퍼런스
- 이기백, 항노화 기술의 연구 사례 및 기술 동향, BRIC View (2021)
- Alejandro Ocampo et al., In Vivo amelioration of age-associated hallmarks by partial reprogramming, Cell (2016)
- Jae-Hyun Yang et al., Loss of epigenetic information as a cause of mammalian aging, Cell (2023)
- Kang Wang et al., Epigenetic regulation of aging: implications for interventions of aging and diseases, Nature (2022)
- Ok Hee Jeon et al., Systemic induction of senescence in young mice after single heterochronic blood exchange, Nature Metabolism (2022)
- Yi Zhu at al., The Achilles’ heel of senescent cells: from transcriptome to senolytic drugs, Aging Cell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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