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건강

암에 걸리지 않는 벌거숭이두더지쥐

Whatever 2023. 3. 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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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두더지쥐 (naked mole-rat, Heterocephalus glaber)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와 같은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사막의 굴 속에 서식하는 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쥐의 모습과는 다르게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털 없이 주름진 피부에 길게 늘어져있는 앞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볼품없어 보이는 외형과는 다르게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갈망하는 몇 가지 특이점을 가지고 있어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예로 들면, 첫 번째는 P 물질 (substance P)이라 부르는 신경전달물질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포유류에 속하지만 개미나 벌처럼 여왕과 여왕의 교미 상대인 1~3마리의 수컷, 전사, 일꾼 계급으로 나눠져 철저하게 사회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대사의 25% 정도만을 사용해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으며 수명도 길어서 일반적인 쥐의 수명인 3~4년을 훌쩍 넘는 30년까지 살 수 있습니다. 또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혈액 속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특별히 많이 포획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특징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저명한 과학저널에 관련 연구를 발표했으며 지금까지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암에 걸리지 않는 생물학적 특징과 이유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합니다. 

 

사진 1. Naked mole-rat (thesiencelife.com)

 

 

H. glaber가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 및 가설 

H. glaber(벌거숭이두더지쥐의 학명)가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에 대한 핵심 가설 중 하나는 H. glaber의 몸에 있는 고분자 히알루로난(HMM-HA)이라는 단백질의 존재입니다. HMM-HA는 암세포 주변에 장벽을 만들어 암세포가 분열해 다른 신체 부위로 이동하는 것을 막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HMM-HA는 암세포의 성장과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또한 H. glaber는 암의 주요 발생 원인 중 하나인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손상된 세포가 분열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주는 p16이라는 단백질과 손상된 세포가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p27이라는 또 다른 단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H. glaber는 신진대사율이 낮기 때문에 세포가 다른 동물만큼 자주 분열하고 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DNA 복제 중에 오류가 발생하는 가능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1. HMM-MA의 존재는 실험실에서 밝혀졌습니다. 실험실 세포배양 접시에서 H. glaber의 세포를 배양했을 때 세포가 서로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끈적해져서 세포를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세포가 생산해서 세포 외 매트릭스로 방출하는 HMM-MA이라는 복합당 때문에 끈적임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HMM-MA 생산을 방해하거나 당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동을 활성화하면 세포가 서로 뭉쳐 암 저항성이 저하되고 심지어 종양이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2. H. glaber의 세포는 접촉에 민감하기 때문에 주위에 세포가 가까이 있을 경우에 세포분열을 멈춥니다. 게다가 H. glaber 세포는 밀도가 비교적 낮을 때부터 접촉 억제 현상이 일어나 세포가 빽빽하게 뭉쳐 자란 종양 덩어리를 형성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조기 접촉저지(contact inhibiton)'라고 부르는데 이 현상은 p16와 p27이라는 유전자가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접촉저지 경로(contact inhibition pathway)를 구성하는 다른 단백질과 분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다음 연구과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3. 낮은 신진대사는 DNA 손상 가능성과 세포 복제 중 오류를 줄이고 세포 복구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이는 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손상된 세포의 축적을 방지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종합적으로 H. glaber의 암에 대한 저항력이 높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H. glaber의 암 저항성에 기여하는 고유한 유전적 및 생리학적 특성을 인간에게 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여부도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H. glaber가 암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이유와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암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쩌면 인간이 열망하는 암 정복을 한 발짝 앞당겨줄 정보를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독특한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면서 얻게 될지도 모르죠. 

 

 

 

페토의 역설 (Peto's paradox)과 벌거숭이두더지쥐

페토의 역설은 흔히 암생물학 교재의 첫 장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영국의 통계학자이면서 역학자인 리차드 페토는 세포의 돌연변이 누적으로 암이 발생한다면 생물의 사이즈가 크고 수명이 길수록 암 발병률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상식적으로 세포가 많으면 세포분열을 겪는 세포가 많고 수명이 길다면 세포분열 횟수가 늘어나 돌연변이가 생길 위험이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보다 100배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 코끼리는 사람보다 암으로 죽는 경우가 적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암치사율이 11~25%인데 반해서 코끼리의 암 사망률은 4.81%에 불과합니다. 즉, 페토의 역설은 종 수준에서 암의 발병률이 유기체의 세포 수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코끼리의 암 발생률이 낮은 이유는 암 억제 유전자 때문입니다. 암 세포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TP53 유전자의 경우 인간이나 다른 동물은 한 개만 있는데, 코끼리는 20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TP53은 유전자가 암세포 자체의 발생을 억제하기보다는 이미 생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대형 포유류는 진화를 거치면서 유전적 및 생리학적으로 암을 억제하는 선택적 조절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TP53에 의해 암세포가 될 위험이 있는 세포를 제거해서 암 방생률을 낮추게 된 것입니다.

 

그림 1. 페토의 역설 요약

 

반대로, 몸집이 작지만 수명이 긴 H. glaber와 같은 설치류는 인간이나 다른 대형 포유류와는 다른 항암 메커니즘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었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에 확립되었던 페토의 역설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코끼리가 암세포 발생을 억제하는 TP53의 유전자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H. glaber도 생물학적 특징이나 극한의 서식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진화과정을 통해 암 저항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레퍼런스

- Andrei Seluanov et al., Hypersensitivity to cantact inihibiton provides a clue to cancer resistance of naked mole-rat, Proc, Natl. Acad. Sci. U S A. (2009)

- Benjamin Roche et al., Natural resistance to cancers: a Darwinian hypothesis to explain Peto's paradox, BMC Cancer (2012)

- Delphine del Marmol et al., Abundance and size of hyaluronan in naked mole- rat tissues and plasma, Nature (2021)

- Marc Tollis, et al., Petos's paradox: how has evolution solved the probelm of cancer prevention?, BMC Biology (2017)

- Pedro Freire Jorge et al., Low cancer incidence in naked mole-rats may be related to their inability to exrpess the warbug effect, Frontiers in Physiolog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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